ID/PW 찾기 | 회원가입
 

 
작성일 : 17-11-12 14:28
[박수찬의 軍] 군복 입지 않으면 병역의무 가치도 다른가요.
 글쓴이 : 진맘
조회 : 30  
[박수찬의 軍] 군복 입지 않으면 병역의무 가치도 다른가요.
기사입력2017.11.12 오전 6:00

아버지 설희태(73)씨는 살아오면서 학업에 한이 사무쳤다. 그래서 큰아들 설동진씨가 학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살뜰히 보살폈다.

교수의 꿈을 품었던 큰아들 설씨는 연세대 경영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밟았다. 그러다 2002년 3월 입대해 육군 20사단에서 훈련을 받고 아내와 한 살 딸(2001년생)을 남긴 채 같은해 9월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 국제협력요원으로 카자흐스탄으로 떠났다. 국제협력요원은 외교부 산하기관인 코이카에서 해외에 파견했던 요원으로 활동을 마치면 보충역으로 군복무를 이행한 것으로 인정받는 대체복무 제도였다. 열악한 현지 환경에서도 주어진 업무를 수행하던 큰아들 설씨는 2004년 9월7일, 현지 숙소에 침입한 강도 2명에게 피살되고 만다. 그의 나이 서른이었다.

큰아들이 이역만리 타국에서 병역의무를 이행했기 때문에 아버지 설씨는 큰아들이 순직처리될 거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국제협력요원을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국가유공자법) 적용대상에서 제외하는 법(병역법 제75조 제2항 및 제26조 제1항 제1호)이 있었기 때문이다. 병역법 제75조 제1항은 국가유공자법의 예우, 지원 대상으로 제26조 제1항 제1호에 규정된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공공단체 및 사회복지시설 공익근무요원(現 사회복무요원)만 규정했다.

유족은 2007년 국가보훈처에 국가유공자 등록 신청을 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같은해 8월 수원지방법원에 국가유공자등록 거부 취소 청구 소송을 제기하면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2010년 7월 5대 4로 합헌 판결을 내려 유족들의 희망을 꺾고 만다.

이 사건은 국가안보에 대한 우리나라 남성들의 공헌과 희생이 병역의무 형태에 따라 차이가 있느냐는 논란과 직결된다. 현역병 대신 다른 형태로 군복무를 이행하는 대체복무제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각과도 연결되어 있다.

◆ 판결 기준이 된 ‘자의금지원칙’

헌법재판소의 당시 판결문을 보면 재판관 9명은 이 사건에 자의금지원칙을 적용했다. 자의금지원칙은 본질적으로 서로 같은 것을 자의적으로 불평등하게 또는 본질적으로 서로 다른 것을 자의적으로 평등하게 취급하는 것을 금지하는 개념이다. 코이카 국제협력요원과 공익근무요원의 국가유공자법에 의한 보상이 서로 다른 것이 헌법상 평등권을 침해하는지 여부를 심사하기 위해서는 자의금지원칙에 입각한 심사가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자의금지원칙에 의거해 심사를 했지만 재판관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합헌 의견을 낸 재판관 5명은 병역의무 형태와 미이행 시 처벌 수준 등에 초점을 맞췄다. 이들의 해석에 따르면, 병역법 상 공익근무요원이나 현역병, 코이카 국제협력요원 모두 병역의무가 강제되는 부분은 같다. 다만 공익근무요원과 현역병이 강제적으로 소집되는 것과 달리 코이카 국제협력요원은 병역의무자가 병역의무를 이행하고자 본인 의사에 의해 국제협력요원이라는 복무형태를 선택하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공익근무요원과 코이카 국제협력요원을 달리 취급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봤다.

또한 보훈정책이 국가통합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볼 때 공익근무요원과 코이카 국제협력단원은 국가통합 효과에서 차이가 있고, 코이카 국제협력단원이 공익근무요원보다 대체복무적 성격이 강하며, 코이카 국제협력요원은 병역법이 아닌 국제협력요원법(現 폐지)의 적용을 받고 있다는 측면에서 헌법상의 평등권을 침해하지 않으므로 병역법 제75조 제2항은 헌법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봤다.

반면 조대현, 김종대, 이동흡, 송두환 재판관은 소수의견을 냈다. 국가유공자법에 따른 보상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희생과 공헌인데, 공익근무요원과 코이카 국제협력요원의 병역이행은 희생과 공헌의 성격이 다르다고 볼 수 없는데도 지원절차나 제재, 국익기역 방법 등의 차이에만 근거해 차별을 두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코이카 국제협력요원은 국제업무에 필요한 기술이나 지식이 필요해 지원을 받아 선발하는 것이며, 국내에서 근무하는 공익근무요원보다 위험한 경우도 많은데 선발절차 등의 차이에 의해 국가유공자법상의 보상 여부에 있어 공익근무요원과 코이카 국제협력요원을 다르게 대하는 것은 정당화할 수 없다고 봤다.

이들은 공익근무요원과 코이카 국제협력요원은 법률에 의해 강제된 병역의무를 이행하는 사람들로 병역의무를 대체하는 새로운 성격의 업무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국제협력요원법의 존재에 대해서도 국가유공자 대우 결정에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지 않는다고 해석했다. 따라서 코이카 국제협력요원을 국가유공자로 대우하도록 규정하지 않은 것은 헌법 제11조 제1항의 평등원칙에 위반된다고 판단했다.

◆병역의무 형태가 다르다고 가치도 다른가

군 대체복무에 의한 코이카 국제협력요원은 지난해 폐지됐다. 병역자원 수급 문제를 고려한 국방부의 정책 변화와 관리 소홀 논란 등에 따른 조치였다. 하지만 병역의무를 이행하는 방법의 차이가 국가안보에 공헌하는 가치의 차이로 연결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는 국회에서도 헌법재판소에서도 제대로 다뤄지지 못한 채 잊혀졌다.

신체 건강한 남자라면 누구나 병역의 의무를 져야 하는 우리나라에서는 ‘군(軍)부심’이 존재한다. 어떤 형태로 어떤 곳에서 군복무를 했는지를 두고 가치를 규정해버리는 것이다. 대체복무자보다 현역병 또는 사회복무요원이, 사회복무요원보다 현역병이, 후방부대 복무자보다 최전방 현역병이, 행정병 등 비전투병보다 전투병이 병역의무를 더욱 충실히 이행했다고 보는 시각이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다 보니 “군생활 어디서 하셨어요?”라는 질문에 현역병으로 복무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순간적으로 움찔하거나 어색해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산업기능요원 등으로 대체복무를 한 사람들을 “편하게 복무했다”라며 부러워하면서도 “군복무는 현역이 진짜”라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도 있다.

과연 군복무에 대한 가치는 병역의무 형태에 따라 다를까. 현역과 예비역 군인들은 개인적인 의견을 전제로 대부분 “차이를 두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군 관계자 A씨는 “(병역의무) 형태나 제도의 차이에 관계없이 군복무는 고귀하고 소중한 것이다. 국가안보를 위해 청년들이 청춘을 바치는 것에 차이가 있을 수 없다. 군복무의 가치가 동일한 만큼 병역을 이행한 사람들에 대한 보상수준도 같아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예비역 장교출신인 B씨는 “헌법과 병역법에 병역의무를 명시하고 있으니 다들 입대를 하는 것이다. 다만 자신의 신체적, 사회적 형편과 장래 인생계획 등에 맞춰 나라에 공헌하는 방법을 달리하는 거다. 그것이 가치의 차이로 이어질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현역 군 간부인 C씨도 “행정병도, 비무장지대(DMZ) 수색병도, 최전방 수호병도 나름대로 힘들게 군생활하고 어려움을 겪는다. 복무 장소나 형태에 관계없이 가족과 사회와 떨어져 지내는 군복무는 다 힘들다. 그렇게 힘든 군복무기간을 거친 사람은 누구나 똑같이 인정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병역의무 이행은 아무런 대가가 없는 공동체 구성원의 의무다. 군복무기간 동안 행복추구권과 평등권, 자유권 등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헌법상 권리들을 침해받으면서도 대부분의 남성들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인 20대 초반을 병역이행에 기꺼이 바치는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군복무를 기피대상으로 보고 최대한 피하려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서 국방의 의무라는 우리 사회의 가치가 크게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은 병역법에 의해 입대해 군복무를 마쳤음에도 힘든 보직을 맡지 않았다는 이유로, 현역병으로 군생활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법적 문제가 있다는 이유 등으로 군복무의 가치와 그에 따른 보상에 차등을 두는 것이다. 이는 국가안보의 근간인 국방의 의무를 흔들고 군의 존립을 흔들며 국민통합에 악영향을 미치는 행위다. 병역의무의 숭고한 가치를 지키려면 현역병도 사회복무요원도 의무경찰도 대체복무요원도 국가안보에 대한 헌신을 똑같이 인정받는 풍토가 필요하다.

2000년대 우리 사회는 병역의무의 가치에 대한 고민 없이 병역 관련 법률을 다루다가 이역만리 타국에서 대체복무 형태로 국격을 높이는 활동을 하다 숨진 한 코이카 국제협력요원을 그의 공헌에 맞게 대우하지 못했다. 이같은 과오가 반복되어서는 안된다. “내가 서 있는 곳이 최전방이다”라는 말이 우스갯소리가 아닌, 우리 사회 전반에서 진정성을 가진 울림으로 퍼져나가야 한다. 그래야 우리 군이 ‘가고 싶은 군대, 보내고 싶은 군대’로 국민들 사이에 자리 잡을 수 있고 국방의 의무가 숭고한 가치를 지닐 수 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Copyright ⓒ milsos.com All rights reserved.